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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사랑의 기술

ch5rong 2023. 5. 18. 16:07

1. 사랑은 기술인가? 

  • 결혼은 사회적 고려를 기반으로 결정되었고, 사랑은 일단 결혼이 성립한 다음에 전개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 사랑의 경우, 포기는 불가능하므로, 사랑의 실패를 극복하는 적절한 방법은 오직 하나뿐인 것 같다. 곧 실패의 원인을 가려내고 사랑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 최초의 조치는 삶이 기술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기술'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 기술을 배울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 : 이론의 습득, 실천의 습득 , 기술 숙달이 궁극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2. 사랑의 이론

  •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말한다면, 사랑은 본래'주는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 주는 것은 잠재적 능력의 최고 표현이다. 준다고 하는 행위 자체에서 나는 나의 힘, 나의 부, 나의 능력을 경험한다. 고양된 생명력과 잠재력을 경험하고 나는 매우 큰 환희를 느낀다. 나는 나 자신을 넘쳐흐르고 소비하고 생동하는 자로서, 따라서 즐거운 자로서 경험한다. 주는 것은 박탈당하는 것이 아니며 준다고 하는 행위에는 나의 활동성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더 즐겁다.
  • 자기 자신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부자이다. 그는 자기를 남에게 줄 수 있는 자로서 자신을 경험한다.
  • 준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주는 자로 만들고, 두 사람 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기쁨에 참여 하는 것을 의미한다. 
  • 충분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랑의 '행위'에 있다. 이 행위는 사상을 초월하고 언어를 초월한다. 사랑의 행위는 대담하게 합일의 경험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그러나 사고를 통한 지식, 곧 심리학적 지식은 사랑의 행위를 통해 충분한 지식을 얻기 위한 불가결한 조건이다. 다른 사람의 실상을 보려면, 즉 내가 그에 대해 갖고 있는 환상, 곧 불합리하게 일그러진 상을 극복하려면, 나는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알아야 한다. 인간을 객관적으로 알게 될 때에만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 인간의 궁극적 본질을 알 수 있다.
  • 어린아이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 받는다'는 원칙을 따른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자신이 자신의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는 단계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하자면 그는 어머니다운, 그리고 아버지다운 양심을 갖게 되어야 한다.
  • 만일 내가 참으로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게 된다. 만일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세계를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나 자신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3. 현재 서양 사회에서 사랑의 붕괴

4. 사랑의 실천

  • 기술에 숙달하려고 해본 사람은 누구든지 어떤 일을 달성하려면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빠른 결과만을 바란다면, 우리는 결코 기술을 배우지 못한다.
  • 어떤 기술을 배우는 조건은 기술 습득에 대한 '최고의 관심'이다.
  • 우리가 어떤 기술에 숙달하려면 삶 전체를 이 기술에 바치거나 적어도 이 기술과 관련시켜야 한다. 자기 자신이 기술 훈련이 도구가 되어야 한다.
  • 누구든지 삶의 모든 국면을 통해 훈련, 정신집중, 인내를 '실행'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 
  • 훈련이 외부로부터 부과된 규칙처럼 실행되어서는 안되고, 자신의 의지 표현이 되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하면 훈련을 즐겁게 생각하고 훈련을 그만두면 결국 실패하게 될 행동에 천천히 익숙해지는 것이 본질적인 일이다. 훈련은 어쨌든 고통스러운 것으로 가정하고, 고통스러운 훈련만이 좋은 훈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서양의 훈련에 대한 개념(모든 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거니와)의 불행한 한 측면이다. 동양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에게ㅡ인간의 심신에ㅡ좋은것은, 비록 처음에는 약간의 저항을 극복해야 하더라도, 역시 즐거운것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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