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선교

<도서> 일본선교의 빛과 그림자 - 김안신

ch5rong 2018. 7. 27. 11:31



l프롤로긔

하나님은 나를 보내는 선교사가 아닌 가는 선교사로 이미 몫지어 놓고 계셨다. '선교의 불모지요 미개한 조선 땅에 아펜젤러, 언더우드, 스크랜턴을 선교사로 보내셨던 것처럼' 내게는 파격적인 일이었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변명도 이유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 나는 항복하고 말았다.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때마다 함께 해주신 하나님께서 일본 교회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요인과 복음화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일본 교회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셨다. 


1부 다 가졌으나 가장 귀한 것을 못 가진 나라



I for Japan! Japan for world! World for Christ! Christ for God!" 나는 일본을 위해! 일본은 세계를 위해! 세계는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위해! 이다. (p.52)

일본선교는 인내의 싸움이다.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 앞에 설 그날을 기다려야 한다.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누가 더 참느냐에 따라 열매의 많고 적음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p.54)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님 한 분밖에 없는데 인간 관계의 화목이나 화평을 중요시하느라고 하나님과의 진정한 화해를 무시한다면 사실 이웃과의 화해도 진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님 안에서만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먼저 하나님과의 화목을 회복한 다음 이웃에 대한 화목을 도모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p.60)



3부 가능성이 무한한 일본 선교

"선교는 인내의 싸움이다!" 특히 일본 선교는 어떤 면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긴 동굴을 더듬으면서 걸어가는 여행자와 같다. 아무리 열심히 뿌려도 열매가 보이지 않고 가능성을 전혀 예측하라 수 없는 일본 선교! 돈과 시간과 인재를 아무리 쏟아부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는 일본 선교! 누가 뛰어들겠는가! 더구나 아직도 옛 고통을 다 씻지 못한 우리에게 일본 선교는 불필요한 사항으로 치부되기 쉽다. 그러나 일본 선교는 한국 교회의 몫이다. 어느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는 필연이다. 진실하고 겸손하며 부지런한 자세로, 인내하며 끝까지 나아가야 한다. 세계 여러나라에 파송된 선교사들이 자기 목숨을 담보로 사역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던 것처럼, 언더우드가 황무지 한국 땅을 눈물로 적시며 열매를 기대했던 것처럼, 우리도 일본 땅에 추수의 기쁨을 주실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며 인내의 싸움에서 승리해야한다. (p.107-108)


누가 일본을 도울 수 있을까?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그들은 엄청난 희생과 수고를 하고 억만금과 시간을 투자했다. 일본의 복음화를 위한 그들의 사랑과 헌신을 깊이 존경한다. 그들로 인해 구원받고 주님을 기쁘시게 한 이들은 부지기수 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서양선교사들이 놓은 기초돌 위에 일본 선교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루어갈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이다. 가깝고도 먼 두 나라! 일본의 왕은 옛날 백제 왕손의 후예였음이 본인의 고백으로 밝혀졌다. 지정학적으로도 언어학적으로고 가장 가까운 나라 한국이 일본을 도울 때가 왔다. 임진왜란 때의 극심한 피해, 일제 강점기 36년간의 식민지 통치로 인한 핍박들, 지금도 계속 비싸게 지불되는 기술 사용료, 헤아리기 어려운 침략의 역사, 이런 아픔들을 생각하면 분명 원수의 나라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최초로 갖게 된 한글 성경은 일본에서 번역되었다. 우리는 다방면에서 복음의 빚진 자다. 우리가 일본을 영적으로 돕는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국 교회의 핍박을 피해 아메리카로 건너간 퓨리턴들이 왕성한 복음의 나라를 건설 한 후 자기들을 괴롭혔던 어러미느이 나라 영국을 위해 얼마나 큰 수고와 희생을 했던가? 복음의 빚진 자로서 마땅히 일본선교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우리는 강도 만난 일본을 주님의 마음을 품고 도와야 한다. 이는 주님의 명령이요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할 전도자의 사명이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 딤후4:2는 주님의 거룩한 명령에 대한 순종이다.

 

4부 일본교회에 신선한 충격을 준 뉴라이프

팀원들이 사역하는 기간은 오가는 날과 관광하는 하루를 제하면 대체적으로 열흘 정도다. 그러나 그 열흘 동안에 일본 교회에 여러 해 걸려도 못할 일을 해낸다. 집집마다 방문하여 구원의 복음을 전하거나 거리에서 전도지를 나눠주며 교회의 행사에 초청함은 물론, 서툰 일본어로 사영리를 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들은 일본 교회를 위해, 일본의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뜨겁게 기도한다. 매우 어설픈 섬김이지만 이들의 열정적인 헌신을 통해 우리 주님이 친히 일하시는 모습을 일본인들은 보게 었다. (p.124)

"하나님! 저는 교회 주변에 살고 있는 10만 명의 피값에 깨끗합니다. 10만 가구에 전도지 배부가 끝났습니다. 저와 성도들의 힘힘만으로는 모못할 일을 한국 대학생들이 해주었습니다. 무 감사합니다. 전도지를 반드시 읽게 하시고 구원의 문이 열리게 해주소서. 읽지 않은 채 버려지지 않도록 비상 섭리하여 주시옵소서." (p.133)

주님은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 하셨는데 우리는 과연 주님이 찾으시는 잃은 양에 대해 마나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교회로 찾아오는 이들을 천하보다 귀한 재로 알고 열심히 양육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p.134-135)

성경은 책 중의 책이며 인간 만사를 판가름하는 일한 책이다. 성경이 '예'하면 '예'가 되고 '아니요'함녀 '아니요'가 된다. 성경에 '일본은 안 된다'는 말이 없는 한, 일본 선교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가능하다'이다. "할수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 9:23 고 하지 않았는가? (p.143) 

일본에서 악령의 역사가 가장 심한 지역은 오키나와다. 대낮에 아파트에서 귀신들이 산발하고 걸어다니는 모습을 본 주민들이 무서워 못 살겠다며 하나 둘씩 퇴거하는 바람에 아파트 전체가 텅 비게 된 일도 있다고 한다. 반면 성령의 역사가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지역도 오키나와다. 이곳에는 '노로'와 '유타'라는 무당이 있다. 노로는 관청에서 행사가 있을 때 축복하는 일을 하고, 유타는 서민 대중에게 절대적 영향을 끼친다. 오키나와는 이 무당들의 활약이 크게 두드러진 지역이다. (p.147)


악령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예수님 당시부터 악령의 역사를 타파하시고 택한 자녀들을 선한 길로 인도하신 성령님이 더더욱 강하시다. 그러므로 오키나와 주민들뿐 아니라 일본 열도를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들을 모두 척결하실 그날이 머지 않아 반드시 임하게 될 것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일본 열도에 편만할 그날이 꼭 온다는 말이다. (p. 149) 

5부 선교는 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소수의 교회 지도자들은, 이는 죄악이 관영한 도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징조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을 동정어린 눈빛으로 마치 바다 건너 불구경하는 자세로 바라본다든가 '그러면 그렇지' 하는 식의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몇 가지 구호 물품이나 위로 메시지를 보내는 정도로 만족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로서 영적 아픔을 가져야만 한다. 일본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나라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가장 적은 나라이기도 하다. 전인구 0.2%만이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하나님은 복음의 불모지인 일본 선교를 한국 교회에 맡기셨다. 우리는 이 말씀을 다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가령 내가 익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값을 내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존하리라(겔 3:18-19) 
만일 지진으로 사망한 고베 지역의 6천여 명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을 때 "너는 왜 예수를 믿지 아니 하였느나?"는 준엄한 신문에 그 사람들이 "오 하나님이시여, 나에게 예수 믿으라고 말해 주는 람도, 예수 믿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라고 답변한다면 우리 한국국 교회는 책임이 없겠는가? 우리는 일본교회와 함께 일본을 품고 기도하며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p. 163)

일본은 어찌 보면 희망이 없어 보인다. 일본인들 중에는 자기네 나라가 갈 데까지 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 기술로 세계를 휩쓸던 일본을 복음으로 다시 세워 지구촌 만민을 섬기는 나라로 쓰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럴 가능성은 얼마지 있다. 하나님의 뜻이면 불가능은 없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주시는 응답대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일본 교회의 지도자와 성도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줌으로써 자국민 복음화에 앞장서도록 해야한다는 말이다. (p.188)

선교의 십계명
1. 선교는 건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2. 선교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것이다.
3. 선교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4. 선교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릎으로 하는 것이다.
5. 선교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6. 선교는 조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으로 한다.
7. 선교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다.
8. 선교는 현재를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하는 것이다.
9. 선교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이다.
10. 선교는 떠들며 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하는 것이다.   (p.191)

"선교는 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열매를 얻기 어려울지라도 계속 인내하며 심은 씨가 싹이 터서 자라기를 기다리면 언젠가는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p.192)

일본이 지상에서 전도하기 가장 힘든 나라 중 하나라는 사실은 주지하는 바이다. 시간과 정열과 재정을 쏟아부어도 결과가 없는 일본선교! 고국을 떠나 일생을 바쳐 헌신했건만 이렇다 할 결과를 얻지 못한 선교사들의 고충이 얼마나 컸을까? 사역비의 고갈로 인한 생활의 어려움과 자녀교육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생을 바쳐 전도했건만 열매가 보이지 않을 때의 그 좌절감은 어떠했을까? 선교사로 만20년 이상 사역한 내게도 그들이 겪었던 고통은 피할 수 없는 함정이었다. 하지만 선교는 인내의 싸움이니 계속 뿌리다 보면 언젠가는 싹이 나고 자라나 꽃피고 열매 맺을 그날이 올 거을 믿기에 오늘도 여전히 전도할 기회를 엿보다 기도하고 있다. "선교는 나무 심는 것과 같다"는 말은 진리다. 최후까지 일본 선교 전선을 지키면서 고독하기 그지없지만 씨 뿌리는 작업을 계속 하리라. 나의 당대에 열매를 못 얻는다면 나의 후대가 거두고, 그 후대도 거두지 못하면 후대의 후대가 거두게 되리라! 나는 다만 주님이 정해 놓으신 그때를 바라보며 씨 뿌리는 작업을 계속해 가련다. 주님이 나를 기쁘게 받아주리리라 믿으면 힘이 솟는다. (p.193)


6부  예수 청년으로 살아온 발자취

설교해야 할 목사가 남의 설교를 들으며 선교한다는 것은 생지옥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설교하지 않으니 설교를 준비할 필요가 없고, 따라서 성경 연구 시간도 줄어들어 영성이 떨어져 가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교회가 아닌 선교단체 사역을 하는 선교사의 아픔이라면 기쁨으로 가감내해야 하리라 생각은 하면서도 늘 아쉬움이 남는다(p.199)


l에필로그l

주님은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사 6:8라며 우리를 부르신다. 또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행 16:9는 부르짖음이 메아리치고 있다. 우리는 " 땅 끝까지 가라"는 주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도 "도와 달라!"는 만민의 소청을 외면 할 수도 없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6:8 라는 결단만이 남아 있다. 좌우간 가든지 보든지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선교사요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은 선교지다. 일본은 하나님께서 세계 선교를 위해 특별한 사랑으로 남겨두신 나라이다. 이 시대에 우리 주님께서 지구촌 만민 구원을 위해 도구로 쓰시려고 예비해 놓으신 나라임은 너무도 확실하다는 것을 여러 곳에서 보여주셨다. 말씀이 땅 끝까지 가기 위해 반드시 밟고 건너야 할 사마리아, 일본은 분명 사마리아 땅이다. 일본인, 일본 경제, 일본 기술 등을 복음화하여 주님이 마음대로 쓰실 수 있도록 저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은 한국 교회의 책임이자 성도들에게 주어진 위대한 사명이다. 이 부름에 아멘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p.217-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