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21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그 교회에서는 일 년 가까이 기다리라고만 했다. 답답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때때로 금식을 해도 그 응답은 매번 뭔가 기다려야 하는 '대기 상태'였다. 마치 경기가 진행되고 잇는 동안 벤치에 앉아 대기하고 있는 운동선수 같았다.
하나님은 왜 이곳을 보게 하셨을까? 노엘을 만나던 날, 최소한 이곳을 주위에 알려야 할 선교적 책임을 강하게 느꼈다.
p.27 아무도 모르게 놓여 있던 손글씨 편지 한 통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찬양합시다. 큰 은혜로우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끝까지 약속을 믿고 구하는 자에게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전능자요, 구원의 뿔이시오, 반석이신 그분을 찬양합니다.
전도사님을 살피시고 큰 은혜로 이끄시는 하나님, 이 땅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알아주시니 담대하고 강하세요.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사람과 교회를 의지하지마세요. 변할 수 있습니다. 오직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세요. 하나님이 일하실 것입니다. 저는 기도의 할 일을 다시 깨달은 것 같습니다.
할렐루야! 적은 것은 적은대로 보탬이 되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일을 위하여 더 큰 것을 예비해 놓으시리라 압니다. 아무튼 외교관들도 하지 못하는 그 일을 하나님이 감당케 하셨으니 그 놀라운 능력과 크고 높으신 위엄을 송축합니다. 선교의 일이 바쁘면 바쁠수록 사람과 교회를 찾지 마시고, 하나님과의 기도의 교제 시간을 더욱 더 많이 가지시는 전도사님이 되길 기도합니다.
"두 말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아멘 샬롬~!
그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그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된 자가
p.36
인권의 사각지대인 이주노동자들럼 소외되어 있는 람들을 향해 하나님이 내미신 손길, 즉 내 백성이 아니었던 데서 "너는 내 백성이라!" 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엯역사를 위해 내게 베푸신 기적이라고 미믿는다. 선교사가 된다는 것, 또 선교는 어렵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p.59
순간 평소에 불평 섞인 질문을 하던 내 모습에서 답을 얻은 것만 같았다.
"선교를 시키시려면 좀 더 일찍 부르시지, 왜 이렇게 늦은 나이에 시작하게 하셨는지요?"
청년 외국인들을 대할 때, 내가 젊다면 어떻게 마음껏 선교할 수 있었겠는가? 나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은 얼마나 깊고 오묘한지 또 한번 깊은 감사가 나왔다.
p. 52~54 이주민선교전략 01 왜 다문화 선교인가?
왜 다문화선교인가?
다문화사회란 한 사회 속에 다른 종, 민족, 종교, 지역, 성, 계층 등 여러 집단의 문화가 함께 재하는 사회이다. 88서울올림픽은 한국을 국제사회에 개방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특히 1991년 해외투자연수제도와 1993년부터 실시된 산업기술연수제를 통해 동남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또한 2000년 이후부터 국제결혼이 늘어나 국내에서 매년 3만여 쌍이 국제결혼을 하고 있는 추세이다. 전세계적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이주민의 수는 1억 2천만 명으로 추산되며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수는 2015년 9월 말 현재 187만여 명으로서 인구 대비 3.7퍼센트에 이른다. 이렇게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들어오게 된 데는 무엇보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이 원인이라고 할 것이다. 지금의 출산율 1.2 명으로 지속되면 50년 후에는 15세~64세인 생산가능 인구가 3,600만명에서 1,700만 명으로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노동력 부족을 보충하기 위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유입하게 된것이 주된 이유이며, 이외에도 결혼이주여성의 증가와 유학생의 증가도 한 몫 했다.
한국의 경제 성장과 한류의 영향이 한국을 동남아 국가들 사이에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렇듯 다문화사회로 급격하게 진입하면서 한국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세계 각국의 문화와 언어, 음식, 종교 등이 한국사회에서 공존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의 유입으로 인해 한국사회 내 다양성이 증가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한편으로 인종, 문화, 종교 갈등 등 이해 관계에 얽힌 갈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취업난에 외국인들이 내국인의 일자리를 뺴앗는다는 피해의식이 생기고, 외국인 범죄로 인해 외국인에 대한 혐옥오가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다문화샇사회를 공공연하게 반대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다화사회를 지향해야하는가?, 왜 다문화사회여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성경적으로 다문화사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성경은 처음부터 다민족, 다화적 개념을 지향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며 명령하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를 보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은 그 자신이 복의 근너이 되는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로 인해 땅의 온 속이 복을 얻는 데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도 이 점을 언급했다. 하나님이 야곱 지파들과 살아남은 이스라엘 배겅을 돌아오게 할 일은 작은 일이고, 그들을 온 민족의 빛으로 삼아 세상 끝까지 의 구원이 이르게 할것이라고 예언했다(사49:6).
특히 수님께서 승천 직전에 남기신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함으로써 제자들이 복음으로 상을 정복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사도바울은 서신서에서 자신이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 받았음을 누누이 밝히며 복음이 모든 민족을 위한 것임을 강조한 것을 본다.
다문화 선교는 이 시대 한국교회에게 주신 중요한 사명다. 현지 선교사들, 특히 회교권 지역의 선교사들은 선교사의 신분을 숨기고 들어가서 5년, 10년 사역해도 단 한두 명의 신자를 얻기가 쉽지 않다. 설사 개종자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 사회의 문화, 종교의 관습 때문에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스타일대로 살기 힘들어 신앙 성장도 어렵다.
그러나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은 그들의 종교, 문화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한국사회에서 아무래도 도움이 필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다문화선교 단체에게 열려진 마음으로 접근해 온다. 또한 한 국적만이 아닌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한곳으로 모이기 문에 다국적 선교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하나님께서 한국 땅에 모든 민족을 불러 모으시는 이유는 물론 한국 민족을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될 통로로, 새로운 선교의 도구로 쓰시려는 계획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한국교회가 힘써 해야할 일은 지역주의와 민족주의의 사고의식을 극복하고 이 땅에 들어와 있느 수많은 외국인 나그네들을 복음과 사랑으로 섬기는 일이다.
만일 우리가 그들에게 무관심할 경우 부메랑이 되어 많은 사회적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국가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한국교회는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 중간 지대에서 사랑으로 사회를 통합하는 역할을 또한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p.71
선교지에서는 무엇보다 문화를 이해하고 그 문화속에서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 더구나 암미교회처럼 다문화인 경우는 더 많은 주의를 요하게 된다. 다문화의 분위기에서는 어쩌다 농담으로 한 말도 상대방에게는 문제가 되는일들이 발생한다. 크리스토퍼의 행동을 보면서 다문화 시대에 비성경적인 문화를 식별하는 일, 나아가 새로운 기독교 문화을 창출해 나가는 일은 이제 비단 현지 선교를 하는 선교사만의 일이 아니고, 이 시대 한국교회에게 주어진 사명이 되었다.
p.77
선교사는 오직 도움만 주는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아무 조건 없이 언어와 문화가 다른 그들에게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선교사가 해야 할 본분이다. 그래서 선교지에서는 아무 말이 필요없는지 모른다. 그러나 기껏 사랑의 수고를 하고도 선교사가 원망의 대상이 된다면 그야말로 ’선교사는 봉’이 되고 말것이다.
p.79
“돈 생각만 하느라 아직 한국을 잘 몰라요. 지금은 머니타임이니까.”
그 말에 한바탕 웃자 그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머니타임(Money Time)’이라는 말에 한편 마음이 답답해 왔다. 어떻게 20대 청년이 돈 생각뿐일까? 알리가 아니더라도 아마 돈 생각뿐인 이주노동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지난번에 한 이란인은 대화마다 온통 섹스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차 있었는데, 알리 역시 또 다른 측면에서 착잡하게 했다. 정말 그리스도가 필요한 인생들이다. 어디에서부터 선교를해야 하나, 짚어야 할 일이 참 많구나 싶었다.
p. 94~98 이주민선교전략 02 다문화선교의 성경적 신학적 근거
요즘처럼 이주민들이 많아지기 이전에 선교는 꼭 선교사가 선교지에 가야만 되는 것으로 알았다. 이주민선교 초창기만 해도 다국적선교는 전략적인 면에서 비효율적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나도 20년 전, 이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다국적이 된 것에 부담감이 컸다. 하지만 그동안의 사역 경험에 비추어볼 때 본의 아니게 환경적으로 다묺문화선교 사역이 이루어졌지만, 오히려 그것이 풍성한 사역의 내용을 가져온 것을 본다.
다문화선교 사역의 근거와 중요성은 이미 성경에 언급되어 있다. 다문화의 배경은 근원적으로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으로 소급된다.
그 이전에는 언어 소통의 문제가 없었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창11:1)
그런데 당시 사람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할 목적으로 성을 쌓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강림하셔서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어언어도 하나이므로"이같이 시작했담다며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했다. 그 결과 그들은 성 쌓기를 그치고 온 지면에 흩어지고 말았다(창11:7,9).
바벨탑 사건은, 비록 그것이 죄악의 결과로서 심판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인류 세계에 언어 혼잡으로 인한 다양성을 가져다 준 최대의 사건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언어 및 문화의 다양성이 가져온 긍정적인 측면을 놓쳐서는 안 된다. 바벨탑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섬김에서 우리가 화합을 힘쓰면서 다양성을 잘 보존해야 함을 교훈받게 된다. 바벨탑 사건은 또 결과적으로 생육하고 번성해서 땅을 정복하라는 창세기 1:26~28의 문화 명령을 순종하는 데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 되었다.
비록 언어 혼잡이 왔지만 인륜류는 번역 작업을 할 수 있었고, 특히 성경을 모든 언어로 번역하게 되었다. 그래서 문화 명령뿐 아니라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신학자들간에는 이 바벨탑 사건을 두고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과 축복의 섭리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저명한 구약학자 반게메렌(Van Gemeren)은 그의 저서 『The progress of redemption(구속의 진행)』에서 하나님은 태초부터 지리적, 언어적 다양성을 의도하셨고(창1:28), 따라서 이주, 지구의 인구, 문명의 탄생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자연스런 표출이라고 주장한다. 로스(Allen P.Ross)도 그의 저서 『Creation and blessing(창조와 축복)』에서 인류는 그 근본이 같았으나 언어, 영역, 정치에 의해 다양하게 갈라지게 되었는데 이는 인류를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였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아담의 타락 이후에도 하나님의 창조목적(창1:28) 은 유효했으며, 첫 구속의 약속인 창세기 3장 15절의 메시아 예언과 12장 3절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언약이 바벨탑 기사(11장)를 둘러싸고 있어 언어 혼잡 사건이 단순히 하나님의 심판으로 끄탄 버리는 것이 아님을 보게 된다. 다양성 속에서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는 특히 신약 시대에 오면서 뚜렷해진다. 예수님의 주위에는 언제나 소외된 자들과 이방인들이 있었고, 사역 역시 유대인 중심에서 점차 이방인 세계로 확산된다. 더구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승천 직전에 남기신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은 구원이 모든 족속에 이를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제자들이 그 중요한 명령에 순종한 결과, 초대교회만 해도 이방인 출신의 헬라파 유대인들이 많이 섞여 있었다(행6:1).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서신에 나타나 있는 교회관은 다양성을 기초로 한 통일성이 그 특성이다. 그가 이런 교리를 특별히 강조하게 된 배후에는 에베소 교회에 점점 이방인들이 많아지면서 거기에 잡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방인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임을 강조하면서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엡 2:19-22).
이어서 교회 안에 다양한 은사를 언급하고 있다(엡4:7-12). 다양성이 교회의 중요한 특징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믿는 자들은 서로 보완적 통일성을 가지고 한 몸을 이루게 되어 있다(고전12:29-30).
마지막으로 계시록에 요한이 본 환상에서 우리는 다양한 언어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장면을 상상해 볼 수 있다(계7:9-10). 그것은 언어는 다르지만 잘 조화를 이룬 것이다.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 사건, 즉 언어적 다양성이 지워진 것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를 통합하면서 더욱 강조되었다.
결국 다문화사역을 위해서 한국교회는 시대적인 흐름 속에 무엇보다 다양성을 배워야 한다. 어디까지나 문화 속에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의 장벽을 넘지 않으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가 없다.
2013년『워싱턴포스트』는 81개국의 인종차별 실태에 관한 연구를 보도하며 '관용 없는' 한국에 대해 언급했다. 한국은 소득 수준과 교육 수준이 높은 국가들 중에 예외적으로 관용도가 낮은 특이한 경우라고 지적하며, 한국인이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국가적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덧붙였다. 그동안 우리 기성시대가 단일민족, 배달민족의 자부심을 교육받아 온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부쩍 많아진 이주민들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제 다문화사회가 된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만의 이기적인 사고의식을 극복해야 할 때이다. 한편 한국교회는 이주민들이 한국사회에 잘 통합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길은 우리가 그들을 자국민과 같이 동등하게 대해줄 때에만 가능하다. 이주민 교회나 단체도 내국인과 외국인의 교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교회와 공동으로 개발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p.103
살아가면서 겪는 불행이나 고난은 이렇게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삶을 진실하게 만든다.
그래서 '고난은 축복'이라는 말이 있는걸까?
p.107
결국 '예수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그리스도인이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낳는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그리스도인이란 다름 아닌 복음으로 인해 영적 싸움을 싸우는 이들이다.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나아가 복음 증거로 인해 주변에 '예수 소동'을 일으키는 그런 신앙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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