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고길동입니다. 껄껄껄. 오랜만이란 말조차 무색할 만큼 세월이 흘렀습니다. 우리 어린이들, 모두 그동안 잘 있으셨는지. 제가 '아기공룡 둘리'에서 동명의 역할 고길동을 연기한지 40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오랜 시간을 일일이 세지는 않았으나 시간은 공평하게 제 어깨 위에 내려 앉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들 제 역할을 이해한다면서요? 제가 악역이 아니라 진정한 성인이었다는 말을 들을 줄이야,껄껄.
대뜸 30여년 전 쌍문시장에서 어떤 꼬마 녀석이 어묵 꼬챙이로 저를 막 찌르면서 공격하던 일이 생각나네요. 그 녀석도 이제는 저를 이해한다고 할지요? 반가운 웃음과 세월의 섭섭함이 교차합니다. 인생이란 그런 것입니다. 이해하지 못한 상대를 이해해 나가는 것. 내가 그 입장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 모든 거절과 후회가 나를 여기로 이끌었음을 아는 것.
나이가 들어가며 얻는 혜안은 거부하기엔 값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행여 둘리와 친구들을 나쁘게 보지는 말아주세요. 그 녀석들과 함께한 시간은 제 인생의 가장 멋진 하이라이트로 남겨져 있습니다. 보고 싶다고 백 번을 말하면, 보고 싶다고 천번을 말하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이뤄지지 않을 그리움은 바람이 되어 저의 가슴을 스쳐갑니다.
지난봄, 한국에서 워터폴인가 어디선가 하는 회사에서 '얼음별 대모험'을 재개봉하게 되었다며 한 마디 요청하길래 "이제는 우리 사이의 오해를 풀고 싶다." 라고 관객을 향한 제작은 바람을 적어 보냈지요. 알고 보니 우리는 더 풀 오해가 없더군요. 이제는 이해하는 사이가 된 우리, 다들 어떠신가? 살아보니 거울 속에 제 표정, 제얼굴이 비치는지. 껄껄껄.
2023년, 한국에서는 많은 분들이 90년대의 향수와 문화를 추억한다고 들었습니다. 지난 날 누군가를, 어느 장소를, 그 기억들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축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추억하는 모두의 모습을 축복하고, 추억을 통해 지나온 시간을 다시 마주하고 싶어하는, 여전히 앳된 당신의 모습에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꼰대 같지만 그럼에도 한 마디 남기니 잊지 마십시오. '한때를 추억하는 바로 지금이 내 미래의 가장 그리운 과거가 된다'는 것을.
살아야 할 세월 속 정겨운 인연을 믿으며 먼 곳에서 고길동, 2023년 5월.
P.S. 둘리야 너가 이제 마흔이라니, 철 좀 들었는지 모르겠구나 껄껄. 철들지 말 거라. 네 모습 그대로 그립고 아름다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건강해라. 그리고 오래오래 모두의 기억 속에 살아가 주렴.